최근 수업을 하며 자꾸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나는 지금 한 공고(실업계) 고3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이 학생은 다른 일반계 고등학생들처럼 대입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취업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사기업이 아닌 공기업, 한수원 같은 곳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NCS 수리영역을 공부해야 한다. 문제는, 수학 이전에 ‘문제를 읽는 능력’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문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문제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다. “소금물 몇 퍼센트짜리에 소금을 얼마 넣으면 몇 퍼센트가 되느냐”는 초등학생 수준의 문제조차, ‘무엇에 무엇을 넣는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계산 이전의 단계에서 이미 사고가 멈춘다. 사고를 시작하지 못한다. 생각이 자라지 않는다.
수업을 진행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단지 이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 ‘지식체계에 순응하는 법’만 배우고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지식체계, 즉 수천 년 전부터 인간들이 쌓아올린 체계를 그저 흉내 내며 살아간다. 아리스토텔레스, 뉴턴, 가우스 같은 인물들이 만들어놓은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반복한다.
그런데 2025년인 지금에도 우리는 그들의 생각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단순히 모르거나, 외우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이해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에 머무른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왜 나는 400년 전에 살았던 가우스보다 멍청한가?”
이건 단지 수학적 비교가 아니다.
인류의 전체적인 ‘이해 능력’이 정말로 발전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술만 발전했을 뿐, 인간의 ‘지성’은 퇴보하고 있는가?
며칠 전 정치 뉴스를 보았다.
행정부가 사법부의 재판에 대해 국정감사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법사위가 법원 판결에 간섭하는 모양새다. 법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알 것이다.
나는 순간, 이 상황에서도 아까의 ‘가우스’가 떠올랐다.
우리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한국사나 세계사 교과서에서 ‘역사적으로 잘못된 사건’을 배운다. 히틀러, 친일파, 독재자 같은 이름들이 등장한다.
그때는 이렇게 생각했다.
“왜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멍청하고, 나쁘고, 비이성적일까?”
“그래도 지금은 다르겠지. 우리는 과학이 있고, 컴퓨터가 있고, 4차산업혁명이 있잖아.”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그때 우리가 비판하던 ‘과거의 멍청함’이 현재에도 그대로 존재한다.
그 차이는 단지 복장이 정장으로 바뀌고, 무기가 총에서 언어로 바뀌었다는 점뿐이다.
그리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사람들도 언젠가 역사책 속의 인물이 될 텐데,
우리의 후손들은 이들을 보며 우리가 히틀러를 바라보던 시선으로 평가하지 않을까?”
현대인은 더 발전된 사고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논리적 사고와 윤리적 판단력은 오히려 퇴화하고 있다.
젊은 시절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법조인이 되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텔레비전 앞에서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언성을 높인다.
언어는 더 세련되어졌지만, 사유는 더 원시적으로 변했다.
이런 현상은 정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대학생들을 가르쳐봐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복잡한 문장, 조금만 추상적인 개념이 등장하면 그들은 멈춘다.
‘생각의 회로’가 한계에 부딪힌다.
지식을 흡수하려고 애쓰지만, 지식의 구조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저 “졸업하고 취업해서 월급을 받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문득 이런 질문이 생긴다.
“세상은 도대체 누가 발전시키고 있는가?”
수많은 사람들은 하루하루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한다.
다들 바쁘다. 자신 앞의 일을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정치인들도, 언론도, 기업도, 누구도 ‘세상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계속 ‘발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소수의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속도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다수는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들은 이미 기술을 ‘도구’로 쓰는 대신, 기술에 ‘의존’하는 인간이 되었다.
AI를 만들어낸 인간이, 이제는 AI처럼 사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발전하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류는 더 많이 알고 있지만, 더 적게 이해한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더 적은 사유를 한다.”
“더 많은 도구를 만들지만, 더 적은 의미를 만든다.”
그렇다면 진보란 무엇일까?
세상은 정말 나아지고 있는 걸까?
가우스보다 멍청한 현대인,
플라톤보다 혼란스러운 정치인,
그들을 바라보며 “문명은 앞으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오늘 수업이 끝나고 생각했다.
내가 만난 그 학생은 단지 ‘수학을 못하는 아이’가 아니다.
그는 이 시대의 축소판이다.
사고력이 무너지고, 언어가 흐려지고, 판단력이 마비된 사회의 축약된 형태다.
어쩌면 인류의 진보는 기술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의지’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해하려는 의지를 잃은 인간은,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져도 무지하다.
그리고 그런 무지가 쌓일수록, 인류는 서서히 퇴행한다.
결국, 세상을 발전시키는 건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도, 기술을 많이 아는 사람도 아니다.
“이해하려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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